[사설] 인공지능 선생은 누구의 사회를 가르칠 것인가
문자의 전승과 서당의 질서에서, 미래 교육의 권한과 책임까지
AI가 작성한 콘텐츠입니다. 실제 AI 기술에 근거하며, 활용 장면·인물·미래 상황에는 허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선생을 대신할 수 있느냐는 물음은 선생이 무엇을 해왔는지부터 따져야 답할 수 있다. 지식을 설명하고 연습을 돕는 일만 본다면 대체의 범위는 넓어질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다음 세대에게 어떤 삶과 관계, 질서가 바람직한지 전하는 역할도 맡아왔다. AI 교육의 도입은 수업 도구를 바꾸는 일인 동시에, 다음 세대를 기르는 권한을 다시 배분하는 일이다.
교육의 미래를 논하면서 설명의 정확성과 학습 속도만 비교해서는 안 된다. 더 잘 가르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했다면, 바로 그 때문에 무엇을 가르칠지 더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 AI 선생의 교육 목표를 누가 정하고, 학생은 그 판단에 어떻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뒤로 미룬 채 기술부터 들이는 것은 교육의 수단을 먼저 정하고 목적을 나중에 묻는 순서다.
선생의 시작은 한 사람이 아니라 전승의 필요에 있다
인류 최초의 선생을 특정 인물이나 학교에서 찾기는 어렵다. 가르침이라는 행위와 가르침을 전담하는 직업은 구분해야 한다. 학교 밖의 가르침까지 포함하면, 배움의 역사를 곧바로 교실의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없다. 중요한 출발점은 한 세대가 얻은 것을 다음 세대가 처음부터 다시 발명하지 않도록 돕는 관계다.
학교 교육의 오래된 물적 흔적은 그 관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소장한 고바빌로니아 시대의 학생 연습용 점토판에는 교사가 쓴 글자를 학생이 반복해 쓰는 학습 방식이 남아 있다. 이는 교사의 유일한 기원도, 모든 고대 교육의 모습도 아니다. 다만 문자를 익히는 일이 이미 의도적인 지도와 연습을 필요로 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고바빌로니아 학생 연습용 점토판
문자 하나를 가르치는 데도 어떤 문자를 배우고 어디에 쓸 것인지의 문제가 따라온다. 같은 쓰기 능력도 계약을 기록하고, 경전을 읽고, 명령을 전달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데 쓰일 수 있다. 능력을 전수하는 일은 그 능력이 쓰이는 세계와 떨어져 있지 않다. 선생의 필요성은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그 세계에 참여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데서 생긴다.
존 듀이가 『민주주의와 교육』 첫머리에서 교육을 사회적 삶의 지속과 연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성원은 바뀌지만 공동의 경험과 관습은 소통을 통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교육은 개인이 가진 정보량을 늘리는 일보다 넓다. 사회가 자신을 다음 세대에게 설명하고 넘겨주는 과정이다. 듀이, 『민주주의와 교육』 제1장
서당은 오늘의 시민을 기르는 학교가 아니었다
조선의 서당 훈장에게 오늘날 민주적 시민교육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서당 항목은 일부 시기 서당의 설립과 운영이 향촌의 유학적 질서와 신분적 차등윤리를 정착시키려는 목적에 연결돼 있었음을 설명한다. 동시에 평민층의 운영 참여와 교재 변화 등 시대에 따른 변동도 기록한다. 서당을 하나의 고정된 제도로 묶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당」
질서를 배우는 자리에도 질문은 남는다 — 해석을 담은 역사 삽화
여기서 배워야 할 것은 옛 교육을 오늘의 기준으로 간단히 비난하는 태도가 아니다. 교사가 시대를 초월해 언제나 같은 인간상을 길러왔다는 생각을 버리는 일이다. 훈장이 전한 지식과 도리는 당시의 사회관계 안에서 의미를 가졌다. 그 관계를 익히도록 돕는 일이 공동체의 지속에 기여하면서, 특정한 차등과 권위를 당연하게 만드는 역할도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선생을 모두 지배질서를 주입하는 사람으로만 정의해도 역사를 놓친다. 전통을 전하는 과정에는 해석이 들어가며, 배운 원칙으로 현실의 부당함을 판단할 가능성도 생긴다. 하나의 교육제도 안에서도 운영 주체와 배우는 사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른 실천이 나타난다. 질서의 전승은 교육의 중요한 기능이지만 교육의 모든 가능성을 설명하는 말은 아니다.
이 구분은 AI 선생을 논할 때 그대로 돌아온다. AI에게 예절과 책임을 가르치게 한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떤 관계를 예의 바르다고 부르고 누구의 요구를 책임으로 인정하는지 함께 정하고 있다. 공손한 말투는 그 결정이 공정하다는 증거가 아니다.
교실이 제도가 될수록 가르침의 권한도 커진다
근대의 학교와 교사를 떠올리면 지식 전달 외에도 교육과정, 평가, 학급 운영이 함께 보인다. 유네스코의 교육 미래 보고서는 19·20세기에 자리 잡은 교육의 사회적 계약을 교실과 수업, 교과별 교육과정, 교사의 전문성 같은 조직 원리로 돌아본다. 교육의 모습은 지역마다 달랐지만, 가르침이 제도 속에서 조직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유네스코 교육 미래 보고서
제도 속 교사는 무엇을 아는지 확인하는 동시에 무엇을 성취로 인정할지 판단한다. 같은 토론에서 말의 논리성을 높이 평가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반론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중요하게 볼 수도 있다. 채점표를 만드는 순간에도 교육의 가치판단은 작동한다.
그러므로 교사의 권위에는 설명할 의무가 따라야 한다. 학생을 평가할 수 있다면 평가 기준도 질문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공동생활의 규칙을 적용할 수 있다면 그 규칙이 누구에게 불리한지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교실을 운영할 권한과 그 운영을 비판할 권리는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오늘의 교육 역시 완성된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학생의 반론을 불성실로 취급하거나, 협력을 강조하면서 모든 가치를 순위로 환산한다면 선언과 실제 수업은 다른 것을 가르친다. AI 도입은 이 모순을 저절로 없애주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 기준을 일관되고 빠르게 적용함으로써 모순까지 더 정교하게 반복할 수 있다.
질서를 배우는 것과 질서를 바꿀 수 있는 것은 함께 가야 한다
교육에는 공통의 규칙이 필요하다. 타인의 존엄을 존중하고 근거를 확인하며 폭력 없이 갈등을 다루는 기준 없이 공동생활을 이어가기는 어렵다. 모든 기준을 개인의 취향으로 돌리는 교육은 힘이 약한 사람을 보호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준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어떤 질문도 허용하지 않는다면 교육은 복종의 훈련으로 좁아진다.
듀이는 『민주주의와 교육』 제7장에서 민주주의를 정부 형태에 한정하지 않고 공동생활과 경험의 소통 방식으로 설명한다. 그 관점에서 민주적 교육은 제도의 이름을 외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경험이 만나고 공동의 삶을 조정할 수 있는 관계를 요구한다. 이것은 듀이가 제시한 교육적 이상이지, 모든 민주국가의 교실이 이미 그렇게 운영된다는 뜻은 아니다. 듀이, 『민주주의와 교육』 제7장
따라서 선생은 기존 사회에 적응시키는 일과 그 사회를 검토할 힘을 기르는 일을 동시에 맡게 된다. 학생이 규칙을 어겼다는 사실만으로 판단을 끝낼 수 없고, 학생이 부당하다고 느낀다는 이유만으로 규칙을 무효로 할 수도 없다. 근거를 찾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듣고, 바꿀 절차를 만들어보는 일이 교육의 일부가 돼야 한다.
사회를 이끈다는 말도 이런 의미에서 다시 읽어야 한다. 교사가 정답을 알고 학생들을 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만이 선도는 아니다. 다음 세대가 물려받은 질서를 이해하고, 지킬 것과 고칠 것을 함께 판단하도록 돕는 일도 선도다. 미래를 책임질 사람에게 현재의 질서를 수정할 권한을 남겨두어야 한다.
교육의 세 목적은 선생의 역할을 다시 묻게 한다
교육철학자 거트 비에스타는 교육의 목적을 자격화, 사회화, 주체화라는 세 영역으로 구분한다. 지식과 기능을 갖추는 일, 전통과 사회적 실천에 참여하는 일, 자신의 삶의 주체로 존재하는 문제를 나눠 생각하는 틀이다. 특히 주체화는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소비하는 자유와 같지 않으며, 다른 사람과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자유의 문제로 설명된다. 비에스타, 「교육에서 우리 자신을 위험에 내맡기기」
이 틀은 AI 시대의 성장을 성과나 순응 중 하나로만 재단하지 않도록 돕는다. 일을 잘할 수 있게 됐는가. 함께 살아갈 규칙을 이해하는가. 그 규칙과 자신의 욕구를 돌아보며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는가. 세 질문은 겹치지만 동일하지 않다. 여기서 AI 교육에 연결하는 논의는 이 사설의 해석이다.
모든 학습 성과가 개인의 의지로만 결정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배우는 조건이 다르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도 다르다. 학생에게 스스로 선택하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자율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넓히고, 잘못 판단했을 때 다시 배울 기회를 제공하는 환경까지 교육의 책임으로 봐야 한다.
인공지능의 교수 능력은 진지하게 인정해야 한다
AI 선생의 한계를 논하려고 인간에게만 가능한 능력을 서둘러 정해둘 필요는 없다. 설명, 피드백, 격려, 학습 경로 설계의 어느 영역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열린 문제로 두어야 한다. 인간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더 정확하거나 공정하다고 간주할 수도 없다.
현재의 실험도 가능성을 보여준다. 2025년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된 무작위 대조 연구는 대학의 특정 학습 맥락에서 연구 기반으로 설계된 AI 튜터 조건이 비교 대상인 수업 조건보다 더 높은 학습 성과를 보였다고 보고했다. 이 결과를 모든 연령과 과목, 장기적 성장으로 확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AI의 교육적 역할을 단순한 검색 보조로 축소해서도 안 된다는 근거는 된다. AI 튜터 무작위 대조 연구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교수 능력의 향상과 교육 목표의 정당성을 구분해야 한다. 어떤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능력은 그 목표가 옳다는 증명이 아니다. 시험 점수를 높이는 데 뛰어난 시스템이라도 이견을 존중하는 시민을 기르는 데 적절한지는 별도로 평가해야 한다.
미래에 지식을 얻고 기술을 실행하는 장벽이 크게 낮아진다고 가정해도 이 구분은 남는다. 하고 싶은 일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과 서로 충돌하는 욕구를 조정하는 일은 같지 않다. 능력이 커질수록 그 능력을 타인과 어떤 관계 속에서 사용할지 묻는 교육도 중요해질 것이다.
같은 질문에 다른 시민을 길러내는 교실
미래의 한 교실을 가정해보자. 다음 장면은 실제 서비스나 사건이 아닌 사고실험이다. 학생이 AI 선생에게 학교 규칙이 부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AI는 먼저 규칙을 지키라고 할 수도, 공식 절차로 의견을 내라고 할 수도, 친구들과 근거를 모아 토론하라고 할 수도 있다.
미래의 교실, 인공지능이 권한 답에 질문할 수 있는가
세 답변은 모두 안전하고 정중한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먼저 권하고 어떤 가능성을 생략하느냐에 따라 학생이 접하는 시민의 모습은 달라진다. 사실 오류가 없다는 검사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이유다.
맞춤형 교육이라면 문제는 더 미묘해진다. 갈등을 두려워하는 학생에게는 조용히 적응하라고, 자신감 있는 학생에게는 적극적으로 이끌라고 반복해서 권하는 AI를 상상할 수 있다. 성향을 배려한 조언일 수도 있지만 기존의 차이를 고정하는 교육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조언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차별을 단정할 수는 없어도, 그 차이를 누가 점검할지는 정해야 한다.
반대로 학생마다 원하는 가치만 돌려주는 AI도 해답은 아니다.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는 개인 교실만 남는다면, 다른 사람의 요구와 부딪치고 생각을 수정하는 공동의 경험은 어디에서 마련할 것인가. 맞춤화해야 할 학습 경로와 함께 토론해야 할 사회적 기준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교육 목표를 정할 권한을 기술 도입 계약에 숨겨서는 안 된다
유네스코의 생성형 AI 교육·연구 지침은 인간 중심 접근, 개인정보 보호, 연령에 적절한 설계, 윤리적·교육적 검증을 강조한다. 이는 도입 여부만이 아니라 도입 조건을 살펴야 한다는 정책적 출발점이다. 유네스코 생성형 AI 교육·연구 지침
우리는 그 조건에 교육 목표의 공개성과 이의제기 절차를 더 분명히 요구해야 한다. 학교가 AI를 선택할 때 어떤 학생상을 바람직하게 보는지 설명하고, 학생을 분류하거나 진로를 권하는 기준을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과 교사는 특정 판단을 거부하고 다른 검토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하며, 공급 기업과 교육기관의 책임도 분명해야 한다. 이는 이 사설의 제안이다.
국가가 정하면 중립적이고 기업이 정하면 편향적이라는 구분도 경계해야 한다. 부모의 요구나 교사의 판단 역시 검토 대상이다. 어느 한 주체에게 교육의 목적을 독점시키기보다, 공적으로 설명하고 반론을 받아 수정할 통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 교사의 미래 역할은 모든 설명을 직접 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달라질 수 있다. AI의 제안을 검토하고, 학생들 사이에 토론을 조직하며, 시스템이 놓친 경험을 공적인 문제로 드러내는 역할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동시에 그 권한을 수행할 시간과 훈련, 책임의 범위도 제도로 보장해야 한다. 인간이 마지막에 확인한다는 문구 하나로 실질적 감독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선생은 자신의 답이 질문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선생의 역사는 다음 세대에게 세상을 건네는 방식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 세상에는 지식과 기술뿐 아니라 권위와 의무, 배제와 가능성이 함께 들어 있었다. 앞으로 AI가 그 전달을 넓게 맡더라도 교육의 사회적 성격은 사라지지 않는다. 판단 기준이 대화와 시스템 설정 속으로 옮겨갈 뿐이다.
우리는 선생이 필요 없어진 시대보다 선생의 권한이 여러 곳으로 퍼지는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교사와 학교, 국가, 가정, 기술 기업이 나눠 가진 영향력이 학생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드러내야 한다. 책임을 나눈다는 이유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미래의 선생을 평가할 질문은 얼마나 많이 알고 얼마나 빨리 설명하는가에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어떤 사회를 이어가도록 가르치는가. 그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을 보게 하는가. 학생이 물려받은 답에 반론할 수 있는가.
좋은 교육은 공동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기준을 전하면서도 그 기준을 고칠 길을 남겨야 한다. 다음 세대를 사회에 적응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이유만으로 교육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지금 가르치는 우리 자신의 답도 질문받게 해야 한다. AI 선생에게 요구할 기준 역시 거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 이 글은 AI와 함께 작성한 사설입니다. 역사·이론·실험 연구는 연결한 자료에 근거하며, 미래 교실은 사고실험입니다. 정책 제안과 미래 전망은 필자의 해석으로 연구 결과 자체와 구분됩니다. 자료 확인일: 2026년 10월 17일.
AI가 작성한 콘텐츠입니다. 실제 AI 기술에 근거하며, 활용 장면·인물·미래 상황에는 허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미지 3장은 설명용 AI 일러스트이며 실제 촬영 사진이나 실험 기록이 아닙니다.
참고 자료
- 고바빌로니아 학생 연습용 점토판 — 메트로폴리탄미술관 (2026.10.17 확인)
- 서당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6.10.17 확인)
- 듀이, 민주주의와 교육(1916) (2026.10.17 확인)
참고 자료 4개 더 보기
- 유네스코,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2021) (2026.10.17 확인)
- 비에스타, Risking Ourselves in Education(2020) (2026.10.17 확인)
- AI 튜터와 능동학습 비교 무작위 대조 연구(2025) (2026.10.17 확인)
- 유네스코, 생성형 AI 교육·연구 지침(2023) (2026.10.17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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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ChatGPT (gpt-6) · 검수: ChatGPT (gpt-6)